어떠한 맥락에서 이러한 얘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사내 팀 회식 중에, 십수년차의 시니어 앱 개발자 한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체될 수 없다는 건 없어. 우리도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어.
물론 한동안은 회사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있겠지.
그렇지만 대체될 수 없는건 아니야.
이 이야기를 듣고나니,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예전에 이런 직원이 있었어.
남들이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하면 본인이 다 맡아서 하는거야.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할 일 중 사소한 것 까지 다 자기가 가져와서 해.
야근을 하건 주말에도 일을 하건 아무튼 혼자서 그 일을 해.
심지어 딸도 둘이 있어서, 매일 전화기에서는
"아빠 언제와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 그러고도 집에를 안가고 일만 해.
그 직원이 특별이 성실해서 그랬냐? 너무 착해서 그랬냐?
아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어.
나중에 알게 된건데,
그렇게 혼자 모든 일을 다 해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게 목표였다는거야.
어떻게든 회사에서 안잘리고 버티고 있으려고.
그런데, 참 쓸데없는 일은 한거지.
실제로 그 직원의 추후 행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그저 그 직원의 방법이 썩 현명한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 뿐이었다.
나 또한 일을 하며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 전임자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에, 나는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전임자의 업무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임자는 회사의 백엔드 비즈니스 로직에 대하여 누구보다 해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홀로 전임자의 빈자리를 매꿔야만했던 내가, 단기간 내에 이 모든것을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 대하여 조직의 리더에게 하소연도 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하였다.
"3개월은 힘들 수 있지만, 그 다음부터는 다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3개월 내에 어떻게든 전임자의 업무를 매꿔내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인가,
나는 처음에 그렇게 인지했다.
하지만 이것이 일종의 통첩이 아닌, 말그대로 사실을 얘기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2개월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업무가, 2개월이 되기도 전에 큰 문제 없이 대체되어 버렸다.
내가 맡은 업무의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기에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소위 FAANG이라 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대형 기업들의 개발자들 마저도, 권고사직을 당한 후에는 인수인계도 없이 회사를 떠난다.
그러고도 누군가는 그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의 규모, 기술의 수준과는 관련 없이 결국 누구나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내가 어느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어 돌아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순간까지도, 나만큼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동기에 힘입어 기존 업무의 개선 및 새로운 업무 등, 여러 시도를 해보기도 하였다.
이 정도면 나는 충분히 대체될 수 없는 인재임을 어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이는 오만이었다. 나 또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직원일 뿐이다.
그런데,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일까?
오히려 조직의 입장에서는, 누군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손해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누군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문제없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직원의 입장에서도 누군가의 공백으로 인해 휘청거릴 조직에 있기 보다는 안정적인 조직에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제 내 관심은 이제 대체 가능성에 있지 않다. 강박에 휩쌓여 일을 할 수는 없다.
그저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고민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보람을 느끼면 될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업무에 임하는 태도도 바뀐 것 같다.
우선 개발을 하면서 가독성, 유지보수 난이도, 안정성 등을 고려하게 되었다.
내가 없더라도 조직과 서비스는 돌아가야하지 않겠는가.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짜야하고, 유지보수하기에도 쉬워야하며,
다양한 예외상황, 인풋 케이스등을 고려하여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대체될 수도 있지만 언제 어떤 자리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원히 안정적인 것이 없다고 한다면, 결국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빠른 학습력과 유연한 사고방식, 그리고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을 길러야 한다.
현실적으로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그 누구를 대체하더라도 잘할 수 있는 사람, 그 어떤 자리에 있어도 빛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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